[시(詩)가 있는 아침]
구둔九屯에서 김춘성
구둔에 가까워질수록 구둔을 멀리 본다
어제를 보러 왔지만 내일을 보려 하지 않는다.
코스모스 물결이 가까울수록 후회 뒤로 숨어
기다림과 떨림의 눈앞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운 것. 이라지만
지나간 것이라고 다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추억을 만나는 건 미뤄둔 환각을 좆는 것.
그만큼 지남은 팍팍했던 것.
초췌함을 다시 입고 일부러 웃어야 하며 용서하고 잊어주는
구둔에 올 때쯤이면 오후다.
이미 국화가 가득하고 끊어진 철길 어쩌다 이어지고
세월에 묻힌 궤도가 드러나는 구둔의 색, 소리,
다시 돌아보는 꿈. 구둔에서 거기까지 온 생을 찾는다.
가야 할 여행의 거리를 관측한다.
한적한 구둔은 복잡한 사거리여서 구둔에서는 길을 찾는다.
지나온 길과 가할 길을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길.
다 정해져 있는 길을 확인한다
구둔에서는 얼굴들을 만난다.
낱장으로 뜯겨 나갔던 얼굴들이 돌아와
황소의 방울소리로 든다.
가을 풀빛 그나마 남은 초록 속으로
구둔에서 아침은 없어
구둔에서 날을 새우기란 언제나 마땅치 않고 실연되기 어려운 꿈
구둔은 어쩌다 들르는 간이역.
어쩌다 들러 석양을 따라 서둘러 떠나야 하는
구둔은 바라 볼 수 만 있는 것.
#시인 #김춘성 #김춘성시인 #시가있는아침
<저작권자 ⓒ 모닝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인기기사
동정/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