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대표적인 청백리인 이약동은 당시 탐관오리의 횡포가 심했던 제주지역에 목사로 부임해 탐관오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해 백성들의 삶을 보살폈으며, 그로 인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려 하자 한사코 막았고, 선물을 주려하자 받지 않았으나, 백성들이 만들어준 말채찍은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 제주목사를 그만 두고 떠날 때 "제주도 백성들이 만들어서 선물로 준 말채찍은 제주도 백성들의 것이므로 후임 제주목사가 사용하는 것이 맞다"며 관아에 걸어 놓고 떠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약동을 비롯해 맹사성, 황희 등 청백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청백리를 공직자의 최고 덕목으로 여겼던 당시 조선사회의 기류도 있었거니와 청렴에 대해 어려서부터 습관화된 생활태도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되풀이해 행하는 습관은 개인의 인생행로를 결정짓는 가장 구체적인 기본 원리 중 하나이며, 그게 어떤 것이라 해도 현재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장차 원하던 원하지 않던 미래에 결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려서부터 어떤 습관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행로가 대부분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므로 어려서부터 청렴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간다면 조선시대와 같은 청백리가 끊이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청렴은 깨끗한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청결하게 유지만 된다면 우리에게 건강하고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혼탁함으로 인해 병들고, 괴롭고, 불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욱 청결해지고 깨끗해지려면청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국민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이며, 청렴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공직자라면 더더욱 그래야할 것이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목민관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놓은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몸과 마음을 다스림)이 그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목민(牧民: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민관으로서 요구되는 덕목으로 율기(律己:자신을 다스림), 봉공(奉公:공을 받듦), 애민(愛民:백성을 사랑 함), 이 세 가지를 벼리로 삼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는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더욱 더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덕목이 청렴이라 할 수 있겠다. 청렴은 비단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조성되어야 하겠으나, 나부터 먼저 실천하여, 공직사회가 앞장서 청렴 기풍이 조성되고, 나아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청렴한 세상을 위한 공감대를 갖고 노력과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청렴한 세상은 머지않은 미래에 이뤄질 것이며 국가경쟁력 강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청렴도에서 앞서있는 덴마크,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의 청렴국가의 대열에 우리도 당당하게 합류하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모든 공직자들은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공무원의 청렴은 국민의 신뢰와 직결되어 있고 나라발전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모닝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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