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형제의 웃음

모닝투데이 | 기사입력 2018/05/08 [21:21]

[기고문] 형제의 웃음

모닝투데이 | 입력 : 2018/05/08 [21:21]

형제의 웃음

- 5월의 전쟁영웅 김현숙 육군 대령을 기리며 -

 


 

 

 

경기동부보훈지청 홍보담당 김명덕

 

지난 427일 우리는 남북한이 웃으며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평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지만 -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 희망으로 부푼 마음은 감출수가 없다. 우리에게 아큐정전작가로 알려진 루쉰의 시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려움을 겪었어도 형제가 만나 한번 웃으니 과거의 원한이 다 사라졌다’(渡尽劫波兄弟在相逢一笑泯恩仇). 바로 현재 우리의 상황과 잘 들어맞는 시구이다.

 

그 날의 봄을 계기로 평화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이다. 바꾸어 말하면 평화는 전쟁이 있었던 사실을 전제로 하며 평화를 겪는 세대가 현재 존속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전쟁을 겪고 평화를 누리려는 현재의 나라가 애초부터 지켜지지 못했다면 평화는 무의미한 것이다. 국가가 먼저 있어야 지금의 세대가 평화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지금 희망하는 평화의 전제인 전쟁의 역사는 어디서부터인가. 이 땅의 전쟁은 기록된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역사 속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남성과 더불어 한국 여성의 전쟁역사 명맥이 때마다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여성 특유의 강인한 호국의지는 신라 화랑의 전신인 원화(源花) 제도부터 시작된다. 원화 제도는 청소년들에게 효도·우애·충성·신의 등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익히게 하고 예절과 무술을 연마하도록 하는 것으로, 576(진흥왕 37)에는 300400명 무리의 우두머리인 원화에 여성을 임명하기도 하였다. 이는 종교적 의례에서 당시 여성이 차지했던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어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시에도 여성들은 놀라운 지략과 용기로 국난을 타개하는데 일조를 했고, 일제강점기에도 의병단 조직, 항일 결사운동 등에 적극 참여하였다.

 

한 편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에는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해 군사훈련을 실시하려했으나, 지도할 교관이 없었다. 이에 통솔력 있고 유능한 체육교사를 교관으로 양성해 육군 예비역 소위로 해당 학교에 배속하는 배속장교 교육을 실시했다. 이에 기꺼이 1949630일 입교해 911기 여자배속장교가 된 32명이 대한민국 최초 여군 장교가 되었다. 훗날 초대 여군 병과장이 된 교육대장 김현숙(金賢淑) 등이 당시 여군활동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한국여성 호국의 역사 흐름에 힘입어 국가보훈처는 5월의 625전쟁영웅을 김현숙육군대령으로 선정하였다. 김현숙 대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어린 남학생들이 군에 입대하는 모습을 보고 여자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했고, 19508월에 여자의용군 모집에 관한 담화를 직접 발표했다. “국민으로서 여자만이 안일하게 국난을 방관하는 태도로 있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앞으로 맹렬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니 일반의 협조를 바란다. (중략) 남녀를 막론하고 이 시국을 재인식하여 국가총력으로 최후의 평화를 획득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여자의용군 모집 담화문 )

 

조국이 위태로울 때 기꺼이 응답했던 여자의용군을 직접 가르쳤던 김현숙은 19533월 한국 여군으로서는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같은 해 9월 여군창설 3주년 기념식에서 최초의 여군기를, 19548월에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으며, 19609월 초대 여군처장으로 전역하기까지 여군창설과 발전의 주역이었다. 김현숙 대령은 1981117일 지병으로 향년 66세에 별세했으며, 서울 국립현충원 내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최근 들어 보훈의 의미에 대하여 더욱 깊이 생각해 본다. ‘보훈은 갚을 보()에 공 훈()자를 쓰며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라를 지킨 고귀한 희생에 대하여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하나된 우리, 온전한 평화일 것이다. 이 가치를 위하여 누군가의 아들 딸,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눈에는 보이지 않은 무형의 - 그러나 가장 소중한 - 가치를 향하여 기꺼이 희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숭고한 무게감을 우리가 잊지 않는 것이 보훈의 출발점이고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맡바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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