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가난

김춘성 시인 | 기사입력 2018/02/07 [11:07]

[詩가 있는 아침] 가난

김춘성 시인 | 입력 : 2018/02/07 [11:07]

 

▲ 김춘성 시인     © 모닝투데이

/가난

그것도 추억이라고 찬바람 부는 날이면 그립다

지내놓고 보면, 멀리 돌아 보면

눈보라 미친 듯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면

깜깜한 칠흑, 그나마 꽉 막히지 않아

조금이라도 갈 곳이 보인다면

어디든 몸뚱어리 한곳 찢어지지 않는 다행이라면

그 실 날 같은 무엇 하나 부여잡고

그것도 추억이라고, 나 혼자는 살그머니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보잘 것 없이 흔한 또랑 위 지렁이 실금으로 깔린

하얀 얼음장 먼 길로 미끄러지며 조바심거리는, 가난

그것마저도 견뎌냈다고, 추억인 것이다. 그리운 것이다

지지리도 징상스러웠던 모멸의 시간들이라도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기어 넘었다면

의젖한 달팽이 왕관이나마 쓰고

그것도 추억이라고 그리운 것이다

기어이 잊어버리고 두꺼운 절벽으로 외면하고 살다가

입춘 지난 겨울바람 지랄로 들이닥쳐 멱살을 움켜잡아도

그래봤자 이제는 봄바람, 언제까지 가난이겠냐

마침내 세월 지난 언젠가 그리워 질 너도, 가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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