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화장을 고치며

김춘성 | 기사입력 2018/06/04 [23:12]

[詩가 있는 아침] 화장을 고치며

김춘성 | 입력 : 2018/06/04 [23:12]

 

/화장을 고치며      -김춘성

 

오지 않을지도 모를 고장난 막차를 무작정 기다리기란 좀 그렇긴 해

지금, 아무래도 그냥 천천히 걸어야할까봐

막차를 타고 내린다 해도 어차피 거기서도 시오리는 걸어야 할 밤길

어둠이 두렵지 않으니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지

달이라도 뜨면 좋고, 희미해도 눈에 밟히는 그대로 천천히 걸으면 돼

혼자면 어때, 잘그락거리는 자갈들의 울먹임도 들으며

잘나지 못해 눌려있던 개구리소리도 들으며

별똥별 달려 내리는 곳을 바라보며 한 번 형광螢光을 입어보는 것이지

밤길이야 혼자가 제 길이어서

옥양목 길게 늘여진 춤사위 따라 더운 애간장을 식히며

어딘가에 숨어있던 향기들을 하나씩 품어 안으며

쑥스러움에 화들짝대는 텃새들이나 다람쥐 같은

낮은 계급의 짐승들, 어머니의 한숨을 곱새겨보는 것이야

귓가로 흐르는 외딴 마을의 외로운 등잔불소리

허공으로 흩어지는 시골 개들의 의미 없는 고독한 의무

그런 것도 찬찬히 생각해보며 아주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야

아무래도 어떤 아침이래도 아침이야 오지 않겠어?

왜 사느냐고 묻기도 하고, 어떻게 살았냐고 묻기도 하고

행복 때문이라고 대답도 하며

아버지의 검은 버찌들 하나씩 주워 챙기며

흐느끼는 숲의 어깨야 어쩔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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