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오후 -김춘성
어제 늦은 오후였어 오후라 해도 여섯 시가 넘었으니 실은, 초저녁 인거지 어찌 보면, 여름 여섯 시야 저녁이라고 하긴 또 좀 그런 어떻든 퇴근 시간이 시작 됐으니 다 들 어수선한 더위에 파고들거나 찔러대고 있었는데 수원역에서 왕십리 행 분당선 삼 다시 삼 칸에서 막 열차가 출발 하자마자 이쁜 여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막 오십이나 넘었을 그리 늙어 보이지는 않는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야 오초 여자는 얼굴이 붉어지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학생은 맑은 눈망울 생글생글 괜찮으니 어서 앉으시라, 고 하고 결국 오초 여인이 자리에 앉고 여학생은 일어섰는데 여인은 앉자마자 가방에서 돋보기를 꺼내 끼고 읽다 접어 둔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읽기 시작했어 청명역을 지날 때 학생에게 왜 출발 하자말자 자리를 양보 했냐고 물어봤더니 아줌마 가방에 책이 접힌 채로 끼어 잇더라는 거야 그래서 편안히 책 읽으시라고 양보 했다는 거야 오초 여인은 죽전을 넘도록 독서 중이고 나는 기흥에서 학생을 불러 자리를 내어 주었어 나는 겨우 기흥 정도에 머물 정도인 거지 학생과 여인이 더 멀리, 더 편안하게 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지 않겠어?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 학생만큼 착해질까? <저작권자 ⓒ 모닝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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