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 어제 늦은 오후

모닝투데이 | 기사입력 2018/07/23 [16:12]

[시(詩)가 있는 아침] 어제 늦은 오후

모닝투데이 | 입력 : 2018/07/23 [16:12]
▲ 김춘성 시인     ©모닝투데이

 

 

 

 

 

 

 

 

/어제 늦은 오후          -김춘성

 

어제 늦은 오후였어

오후라 해도 여섯 시가 넘었으니 실은, 초저녁 인거지

어찌 보면, 여름 여섯 시야 저녁이라고 하긴 또 좀 그런

어떻든 퇴근 시간이 시작 됐으니 다 들

어수선한 더위에 파고들거나 찔러대고 있었는데

수원역에서 왕십리 행 분당선 삼 다시 삼 칸에서

막 열차가 출발 하자마자 이쁜 여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막 오십이나 넘었을 그리 늙어 보이지는 않는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야

오초 여자는 얼굴이 붉어지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학생은 맑은 눈망울 생글생글 괜찮으니 어서 앉으시라, 고 하고

결국

오초 여인이 자리에 앉고 여학생은 일어섰는데

여인은 앉자마자 가방에서 돋보기를 꺼내 끼고

읽다 접어 둔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읽기 시작했어

청명역을 지날 때 학생에게 왜 출발 하자말자 자리를 양보 했냐고 물어봤더니

아줌마 가방에 책이 접힌 채로 끼어 잇더라는 거야

그래서 편안히 책 읽으시라고 양보 했다는 거야

오초 여인은 죽전을 넘도록 독서 중이고

나는 기흥에서 학생을 불러 자리를 내어 주었어

나는 겨우 기흥 정도에 머물 정도인 거지

학생과 여인이 더 멀리, 더 편안하게 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지 않겠어?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 학생만큼 착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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